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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에세이

《애프터 양》: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존재에 대하여 《애프터 양》: 기억과 감정 사이, 조용한 연결의 이야기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애프터 양》은 조용하고 느린 흐름 속에 깊은 감정과 철학을 담아낸 작품이다. 안드로이드 ‘양’이 고장 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가족, 기억, 존재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건넨다.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말하고, 거대한 서사보다는 소소한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다. 일사불란한 리듬 속 균열의 시작 — 유쾌한 첫 장면에 숨겨진 질문《애프터 양》은 아주 이례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정면 고정 카메라 앞에서 네 명의 가족이 일제히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펑키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형광빛 조명, 절도 있는 안무, 생기 있는 색감은 관객으로 하여금 “따뜻하고 유쾌한 가족 영화인가?”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더보기
[이터널 선샤인], 지워도 남는 마음에 대하여 기억을 지운다는 상상,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을 지운다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마음을 끌어당긴다.사랑을 잊는다는 건 무엇일까,그리고 잊는다고 해서 정말 사라지는 걸까.이 영화는 단지 한 연인의 관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사랑과 이별, 상처와 회복, 그리고 망각이라는 주제를직선적인 서사가 아닌, 감정의 파편과 기억의 흐름 속에 비선형적으로 펼쳐 보인다.‘기억을 지우면 사랑도 함께 지워질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했지만,수업을 함께한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이터널 선샤인》이 진짜로 묻고 있는 건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조심스럽고, 인간적인 질문이라는 것을.사랑이 지나간 자리, 기억은 어디에 남는가조엘은 어느 날 클레멘타인의 기억이 자신에게서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더보기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내 안의 콤바인을 꺼내다 조용한 병동, 더 조용한 사람들 1975년, 체코 출신의 감독 밀로스 포먼은 켄 키지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표면적으로는 한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사회가 정한 '정상성'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식으로 인간이 억눌리고 침묵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정치적 은유이기도 하다.이 작품이 탄생한 1960년대 미국은 뇌전두엽절제술(lobotomy)이 여전히 정신의학적 처치로 사용되던 시기였다. 개인의 감정적 충동이나 반항적인 성향은 치료의 대상이 되었고, ‘고요하고 순응적인 상태’는 회복의 증거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의학적 조치들은 때로 환자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했다.소설과 영화는 이 같은 의료와 권력의 결합에 날카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더보기
〈노래로 쏘아올린 기적〉, 내 목소리의 반경을 넓히다 총알보다 멀리 가는 노래― 3월 성인 영화비평,《노래로 쏘아올린 기적》을 다시 보다3월의 영화비평 수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시기에 이 영화를 보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랍권 음악 오디션에서 우승한 팔레스타인 청년의 성공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 삶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을까?왕성한 사회참여를 유도하거나 감정적 연민을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이 영화를 사람이 어떻게 절망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지켜내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보고 싶었다. 무함마드 아사프가 거쳐온 여정은 단지 가자지구의 소년이 세계 무대에 선 성공기가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세계 속에서, 그래도 노래하고 싶다는 감정의 외침이었다.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도록 가슴이 .. 더보기
“〈중경삼림〉, 감정의 유통기한을 걷다” 중경삼림》, 도시의 감정을 걷는 법— 성인 대상 영화비평 수업을 마치며“슬픔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요?” 4월의 성인 대상 영화비평 수업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을 함께 나누었다. 이 영화는 사랑에 실패한 두 남자와 감정을 숨긴 두 여자의 이야기이지만, 단순한 로맨스 그 이상이다. 1990년대 반환을 앞둔 홍콩, 불안정한 도시의 기류 속에서 왕가위는 감정을 구조화하지 않고 흐르게 한다. 관객은 이 영화 속에서 질문도 정답도 없이, 감정의 흐름과 흔들림을 체험하게 된다. 두 개의 이야기, 한 도시의 감정《중경삼림》은 서로 다른 두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경찰 223호(금성무)는 연인과 이별한 후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사 모으며 감정을 붙잡는다. 경찰 663호(양조.. 더보기
[영화 행복을 찾아서] 이 짧은 순간을 , 전 '행복'이라 부릅니다. 하룻밤 몸 누일 곳도 없어 공중 화장실에서 휴지를 깔고 아이를 재웠다.... 화장실 문 밖에선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고...잠든 아이의 끌어안고 아이의 귀를 막은 채 숨죽여 울 수 밖에 없었다.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난 오늘도 어제보단 더 나은 하루일리 없었다.​영화 포스터 한물 간 의료기기인 골밀도 스캐너를 판매하는 샌프란시스코 세일즈맨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 분)!경제적 어려움 앞에 지친 아내도 떠나고, 사랑하는 아들 크리스토퍼를 돌보는 가드너의 삶에 숨이 턱턱 막힌다. 크리스토퍼가 다니는 보육 시설 벽면에 써 있던 철자 틀린 'happyness'처럼 가드너에게 행복은 불완전하기만 하다. 가드너는 늘 y가 아니라 i 라고 틀린 철자 좀 고치라고 말하지만 끝내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각박한 삶.. 더보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봄,기꺼이 그 시절을 살아낸 우리에게 한 편 한 편 아껴보고 싶은 드라마가 생겼다.넷플릭스 16부작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가 살아낸 이야기를 사계절처럼 펼쳐낸 작품이다. 두 사람의 인생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은 오래도록 머문다.  이 드라마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넷플릭스를 보다가 우연히 제목을 접했고, 동료가 70년대 노래가 많이 나온다며 추천해 주었다. 익숙한 멜로디와 그 시절 감성에 호감이 갔다. 하지만 3월은 강사인 내게 가장 바쁜 시기다. 새로운 강의가 시작되고, 일정이 가득 차 있다 보니 긴 시리즈물을 시작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볼까 말까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던 중, 결국 한 편을 틀었다... 더보기